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면 나를 아는 것만 같고,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 어떤 사람이야?” 어떤 애인에게 시도 때도 없이 물었다. 인생방치병에 걸려 함께 골골대던 애인이다. 우리는 인생을 방조하도록 태어난 인간들 같았다. 세상의 모든 계획과 약속 그리고 의무가 우리를 병들게 했다.

우리는 도망가서 쥐를 키우며 살았다. 어느 날 나는 더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건강하고 싶었다. 나도 인생에 계획이라는 것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증명하고 싶어서 애인 몰래 문구점에 갔다. 예쁜 계획노트를 한 권 사서, 첫 장에 앞으로 할 일들의 목록을 적었다. 기뻤다. 매일 하루의 계획을 세웠다. 침대에 누운 애인에게 “뭐 할 거야, 오늘?” 하고 물었는데, 가혹한 질문이었나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물었다. 애인은 중얼거렸다.

“너? 넌, 매니큐어가 마를 때까지 잘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지.” 애인은 천재다. 나는 더 말해달라고 졸랐다. “너는 양말을 벗고 자지 못해. 양말 한 짝을 벗기면 불안해해. 그렇잖아도 너는 불안이 많아. 요즘에는 더욱. 나를 볼 때조차 불안해하는 것 같아. 너는 비밀이 두 개 있어. 그런데 너는 그 사실을 모르지. 너는 신장이 안 좋아. 태어날 때부터 폐도 안 좋았어. 너는 네가 한 행동은 잘 까먹지만 당한 건 잘 기억해. 거울 앞에서는 이상하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 카메라를 갖다 대면 갑자기 못생겨져. 너는 허벅지에 작은 점이 있어. 그런데 너는 그게 점이 아니라고 우기지. 너는 예술적이고 다채로워. 그런데 둔해. 너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싶어 해. 하지만 그 순간에 끝내야 하는 말들이 있어. 우리가 좋은 말을 나누었다는 기억만 남도록.”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말했다.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애인이 답했다.